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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사실에 비춰볼 때,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한 채로 쌍방간의 이해를 완벽히 요구한다는 것은 오류임이 자명하다.
- 갑작스러운 메일을 꺼내본 건 꽤 당황스러우면서도 지리멸렬한 기억이었다.
충고라면 충고일 수도 있고, 따분하다면 따분할수도 있는 기억인데, 어쨌건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스펙트럼의 폭이 점점 좁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그 폭이 넓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소수에 불과하다.
- 가치관이 확립되고 사고의 방향성이 정립된 나이가 되면 무엇이 옳고 그르냐에 대한 판단보다는 호불호에 따른 기준, 다만 그 기준이 겉으로 표현되지 않고 속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이중성(나쁜 의미만은 아닌)이 강하게 발현되기 때문이다.
- 어차피 한 번 살다갈 인생이면,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아도 다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사회적 통념, 관습, 다른 사람의 시선, 그런 어지간한 것들을 다 신경쓰다가는, 그 '어차피 한번 살다갈 인생'에 깊은 후회를 남길지도 모른다.
- 인간에게 부여된 삶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 그리고 인간 본연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오는 딜레마를 극복해가는 과정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모든 관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모든 부조리함, 스트레스, 자아상실, 모든 것에서 탈피하고 싶다. 관습의 혁파는 내가 늙어죽을때 즈음에야 비로서 이뤄질 것 같다. 적당히 불완전한 사회적 무지의 체계.
- 국민(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존재감이라곤 거의 없었던 어느 여학생이 쉬는 시간에 쭈뼛거리며 내 앞으로 와서는, 대구의 어느 변두리에 같이 가자고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로 나는 그 애를 따라나섰는데, 그 애를 따라가는 길이 너무나 따분해서 괜한 돌맹이에 화풀이를 하며 땀을 뻘뻘 흘려댔다.
소심한 화풀이를 하는 내 모습을 보며 그 애는 참 초조했으리라. 어느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콜라를 먹고, 반쯤 남은 콜병에 빨대를 꽂은 채로 낮고 허름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어느 골목길을 배회하였다.
어느 지점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애가 어느 집 앞에 멈춰서서는 내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대충 그 애 말을 넘겨들었고, 왔던 길을 서늘하게 되돌아와서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로 헤어졌다. 그 애를 싣고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며 나는 잠깐 뭐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입술을 달싹거리며, 눈으로, 눈으로.
다음 날, 그 애는 전학을 간다며 교탁 앞에 서서 짤막한 인사를 했고, 그 애가 앉았던 분단과 내가 앉은 자리 사잇길을 지나며 짧게 묶은 머리를 찰랑거리며 지나섰다. 나는 그제서야, 전날 나를 데리고 갔던 곳이 그 아이가 살 집이란 것을 알았다.
"이런 집에 살면 행복할까?"
"글쎄, 별로 안 그럴 것 같은데?"
"그래, 그렇겠지.."
그 애가 교실을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고, 나와 그 아이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오르가즘 같은 비가 내렸다. 옥상의 인조 잔디 위에 맺힌 물방울이 마치 황사비 내린 다음 날의 이슬 같더라. 너는 참 불투명하다.
- 나는 앞을 잘 보지 않고, 두리번거리기를 좋아한다.
누군가를 만날 때 눈을 마주치지 않고, 누군가와 헤어질 때도 그러하다.
그 누군가가 그런 내 모습에 의문을 가지거나 일말의 오해를 품고 돌아설 때쯤, 돌아서는 그 뒷모습을 흘깃 훔쳐본다.
그 타이밍은 한번도 어긋난 적이 없어서, 때로는 내가 타고난 능력 중의 하나는 이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 광란의 6월이 다시 돌아왔다.
인간들이 이성이란 가치를 향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종교 광신도들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붉은색으로 온몸을 도배한 무리들이 혁명의 파고를 일으키는 공산당원들 마냥 삼성동을 비롯한 강남과 한강변, 홍대 일대를 쓸고 다닌다. 검문검색을 하는 특공대처럼 지나가는 차를 막고는 자신들의 광기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고, 거부하는 자들을 이단으로 몰아세우며 마녀들을 화형시키는 준엄한 재판관처럼 자동차의 본네트를 두들긴다.
- 모든 것이 냉소적이다. 누군가가 뜨겁기 그지없는데, 나는 차갑기 짝이 없다.
뭐래더라. 모든게 도전이라고 그랬던가.
- 오늘이 6월 15일인데, 남북 정상회담한지 10년째 되는 날이고, 누군가가 결혼 한다는 이야기를 하루동안 3건이나 들은 날이기도 하다. 지인들의 결혼 소식이 들려올수록 내 안으로 밀려드는건 깊은 회의감이다. 이것도 진화의 한 가지로 봐주면 좋으련만.
-어렸을 때 가졌던 일종의 동경, 희망, 그런 찬란한 수식어들. 그것들을 로망이라고 한다면....
백원짜리 하나로 세상을 가진 것 같았고, 맑은 날씨가 마냥 좋기만 했던 그런 것들. 그런 로망들이 나이가 들면서 왜 없어지는 것일까. 내 지갑에 십만원이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지는 않고, 맑은 날씨보다는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 더 좋아져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기호일 뿐이지 어렸을 때 가졌던 그런 유쾌함, 짜릿함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무지를 깨우쳐가는 과정을 80년동안 겪으면서, 무지로 인해 파생된 감상들이 깨져가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그것도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나을 때도 있다.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금방이라도 잘 것 같았는데, 현관문을 들어서고 가방을 내려놓으니 나풀거리는 꽃가루처럼 날아가버릴 것만 같더라.
- 잠시 침대에 기대어 뭘할까 고민고민해보다, 내 오른쪽 눈가로 스쳐 지나는 책을 하나 집어들었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한 5년 전쯤에 샀던 책인데, 두 번 읽지는 않았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1번 하고도 반을 읽었다.
문득 그 책을 집어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책이 꽂혀 있던 칸에는 그것 말고도 다른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 차가운 맥주에 차디찬 에어컨 바람에 짜증스러울 정도로 차갑게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책장을 차갑게 넘겨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가슴 아팠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 문득, 5년 전쯤 이 책을 샀을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지가 궁금해서 일기장을 열어보았다.
그 날의 일기는 책의 제목과 전혀 관계없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어떤 연상작용에 의해서 씌어진 것 같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도 저 나이가 되면 누군가에게 이렇게 대해줄 수 있을까 하고.' 라는 구절이었다.
- 그때의 나는 분명히 동경하던 어떤 지점이 있었고, 편협한 관점으로 포장된 열정이 너무나 강렬해서 독선적이기 짝이 없었다. 그런 자기 자신을 그때도 분명 알고 있었고, 변하기 힘든 스스로와 현실의 벽 사이에서 갈등했던 시기였음이 분명했다.
- 동경은 이내 허상처럼 되어 버렸고, 동경은 나를 버렸다. 그리고 나는 나태해졌다.
첫 동정을 떼버린 어느 소년처럼 육질이 연한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어리숙한 사회인이 되어버렸다.
- 깐깐하기 짝이 없던 성격의 일부마저 누군가에게 떼어줘버리고, 이제 남은 건 방관자로서의 관점이다.
요즘의 날씨를 보면서,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 날씨를 방관만 하고 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게 이런건가 싶기도 하다.
근 2년간 정지시켜두었던 페이지를 다시 열게 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충동적이었거나, 그냥 글이 쓰고 싶었던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거나, 둘 다일 것이다. ftp를 정리하다가 나온 건, 5년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빼곡하게 기록했던 일기였다.
싱가포르로 떠날 채비에 한창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햇볕이 들지 않도록 커튼으로 창을 꼭꼭 막아두고, 손톱으로 아무리 긁어대도 꿈쩍도 하지 않던 벽면에 이마를 힘겹게 걸친채로 옷가지에 뒤섞여 잠들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기억 속에서 조차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하자, 까마득한 것 같은 시간들이 마치 눈앞에 있는것처럼 스쳐간다. 그 시절에 피폐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도망갈 궁리에 변명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이, 지금의 나를 똑바로 바라보기 힘겹게 한다.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어느 단편적인 기억.
어느 초여름, 딱 이맘때의 날이었는데 당시에 나는 우산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다.
맑았던 날씨는 늦은 오후 무렵부터 우중충하게 변해버렸고, 해가 넘어갔을 때는 꽤 짙은 비를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지 않았던 내 머리 위로 비가 추적추적 떨어지고, 발밑에서 찰랑대는 물방울이 청바지 끝자락을 타고 올라와서는, 그것도 모자랐는지 흰색 셔츠 끝까지 올라와서는 결국에 울어버렸다.
안정감이라곤 없이 치기만 가득했던 시기, 아마추어리즘에 빠져서 그것이 프로다운 것인줄 알았던 시기, 사람들의 연민이 환호인줄 알았던 그런 시기였다.
그 날의 일기 마지막에는, '오늘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먼 훗날에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가늘어진 빗줄기처럼 기억의 실타래 끝에 갈라진 조각으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에 내려주던 빗줄기마냥 강렬하게 남아 있을까.' 라고 썼다.
5년쯤 뒤에 지금 이 페이지를 다시 보게 된다면, 그때는 또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지금처럼 약간은 부끄러워질지도 모른다. 기억보다 기록이 두려운 것은 흐릿해지는 것들을 지나치게 또렷이 되돌려 놓기 때문이다.